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서평] 무엇이 나의 행복을 방해하고 있는가? : 지금 애덤 스미스를 다시 읽는다 - 도메 다쿠오
    서평 2020. 12. 16. 00:07

     

     

    1. 애덤 스미스의 '국부'에 대한 논의는 '동감'에서 시작한다.

    동감이란 타인의 감정과 행위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마음의 작용이다. 이 동감은 인간을 질서와 번영으로 이끄는데, <도덕감정론>에서는 이 과정이 매우 논리적으로 진행된다.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을 질서와 번영으로 이끄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논했다면, <국부론>은 인간을 번영으로 이끄는 '일반 원리'를 설명한 책이다. 

    <국부론>에서도 '동감'은 계속해서 등장한다. (동감을 비롯하여, <도덕감정론>에서 논한 인간의 본성도 계속해서 등장한다.) 가령, 애덤 스미스는 번영의 일반 원리는 분업과 자본 축적이라고 말한다. 이 중 분업을 발생시키는 인간의 본성 중 하나가 '교환 성향'인데, 이 교환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동감'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나는 상대를 설득해서 나의 제안에 동감하도록 한 다음에 상대의 물건을 손에 넣으려 한다. 상대도 같은 일을 한다. 양자가 서로 상대의 제안에 동감할수 있을 때, 즉 양자의 제안이 일치했을 때 물건의 교환이 성립한다. 이렇듯 교환은 서로의 동감 위에 성립된다." (p151)

     

    당근 마켓에서 중고 거래를 할 때를 떠올리니, 이 부분이 쉽게 공감이 되었다. 중고 물건을 팔 때, 내가 먼저 거래를 제안하고, 상대가 나의 제안에 동감하여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만약 동감하지 않으면, 가격을 깎는 등의 시도를 한다. 비록 일반적인 소비 행동에서도 교환(돈과 물건의 교환)은 일어나지만, 중고거래 때 '동감'이라는 본성이 더 잘 느껴지는 듯하다.


    2. 여전히 '자본 축적'은 생산적 노동을 증가시켜, 국부에 기여할까?

    먼저, 애덤 스미스가 생각하는 '부'란 무엇일까? 그는 국민의 풍요로움, 즉 국부는 '소비 인구로 나눈 필수품과 편의품의 총량'으로 정의한다. 국민의 풍요로움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노동 생산성을 상승시켜 생산적 노동의 비율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분업과 자본축적이 필요하다. 

    애덤 스미스는 자본가가 자본 축적을 통해 노동 수요가 증가하고, 비생산적 노동이 생산적 노동으로 전환되어 풍요로워진다고 말한다.

     

    "오히려 자본가가 자본을 축적하고 사업을 확대함으로써 경제가 성장하고 노동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 그 결과 노동자 계급 중에서 실업자 비율이 낮아져 - 또는 0이 되어 - 임금의 자연율이 상승한다. 이렇게 해서 자본가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노동자 계급의 처지를 개선시키게 된다." (p172)

     

    "자본가가 자본을 축적함으로써 노동 수요가 증가하고, 일이 없는 사람에게 일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p172)


    지금 시대에도 그의 주장이 여전히 유효한지 의문이 든다. 애덤 스미스가 살던 시대와 비교했을 때 많은 것들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가령, 현 시대에는 과거보다 생산적 노동의 비율이 낮아졌다. 생산적 노동이란 필수품과 편의품의 생산에 직접 종사하는 노동이다. 가령, 가수, 배우, 공무원, 교사, 군인 등은 비생산적 노동자이다. 현대 사회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과거보다 비생산적 노동자 수가 더 많아졌다.

    하지만, 생산적 노동인 제조업의 규모가 비생산적 노동인 서비스업의 규모보다 훨씬 크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서비스업에 종사함에도, 제조업의 규모가 유지되거나 더 커지는 이유는, 노동자 대신, 저렴하고 생산성도 높은 기계를 사용하여 노동을 공급할 수 때문이다. 최근에 스마트 팩토리가 화두일 만큼, 기계의 노동 생산성은 증가하고, 생산적 노동자는 감소하는 추세이다. 기술의 발달 때문에 자본축적은 노동 수요를 증가시키지 못하고, 노동자 계급의 처지를 개선시키지 못하는 듯 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업들은 더 부자가 되고, 실업률은 더 높아지는 현실을 보면, 어쩌면 자본축적이 오히려 노동에 대한 수요를 낮추고, 노동자 계급을 가난하게 하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애덤 스미스가 지금의 시대를 본다면, 즉 인간의 노동력 없이도 생산성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국부론>의 내용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하다. 생산적 노동 현장에서 인간이 기계로 대체되었고, 비생산적 노동자가 많아졌는데, 과연 무엇이 국민의 풍요로움을 증진시킨다고 말할까?

     

    3. 무엇이 나의 행복을 방해하고 있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이 책의 논리적인 흐름을 매우 좋아했지만,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가장 마지막 장인 '애덤 스미스의 유산'이다. 여기서는 '마음의 평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인간은 어떤 불행이 닥쳐도 견뎌내기만 한다면 '마음의 평정'을 즐길 수 있게 되고, 어떤 초라한 상태에 있더라도, 우리가 기대한 진정한 행복들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처지를 바꾸기 위해서 자신과 사회의 안정을 해칠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무엇이 나의 행복을 방해하고 있는가? 그것은 마음의 평정과 조화될 수 없는 허영과 우월의 쾌락이다.

    "즉, 한 가지 영속적인 상황과 다른 영속적인 상황 사이에는 진정한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본질적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거기에 어떤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 가운데 일부가 무슨 열렬하고 절실한 갈망의 대상이 아니라 단순한 선택과 편애의 대상이 되고 일부는 단순히 거절의 대상이 된다는 것, 즉 단지 한쪽에 치워져 있거나 회피의 대상이기는 해도 열렬하고 절실한 혐오의 대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p256)

     

    "행복은 마음의 평정과 향유 가운데 있다. 평정 없이는 향유할 수 없고, 완전한 평정이 있는 곳에 향유할 수 없는 것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는 영속적인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길든 짧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고 통상적인 평정의 상태로 돌아온다." (p256)

     

    "탐욕은 가난과 부유함 사이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고, 야심은 개인적 지위와 공적 지위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고, 허영은 무명과 유명의 차이를 과대평가한다. 이러한 종류의 사치스런 격정의 영향하에 있는 사람은 그 자신이 처한 실제 환경에서 불행하고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흔히 어리석게도 그가 감탄하는 처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사회의 안정을 어지럽히는 경향이 있다." (p256)

     

    "한가한 망상 속에서나 생각해볼 수 있는 가장 찬란하고 가장 의기양양한 상황에서 우리가 진정한 행복을 위해 기대하는 쾌락들은, 사실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처한 초라한 지위에서 우리가 언제든지 손 안에 넣을 수 있고 언제든지 우리 마음대로 즐길 수 있는 쾌락들과 거의 언제나 같은 것이다." (p258)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