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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옷을 입는 것은 강간이 일어날 확률을 높이는 결정일까? (feat. 벤샤피로)카테고리 없음 2020. 12. 14. 00:16
최근에 친구가 나에게 벤 샤피로의 영상을 공유해주었다. 질문자가 slutwalk(노출 수위가 높은 옷을 입고 거리를 행진하는 시위 행위로, 여성들의 옷차림이 성범죄를 유발한다는 남성 위주 시각에 대한 저항운동)[1]에 대한 벤 샤피로의 생각을 물었고, 아래는 그의 대답 중 일부이다. (유튜브의 자막을 그대로 쓴다)
https://www.youtube.com/watch?v=LlSnplZss8E&feature=youtu.be
If somebody commits a sexual assault the only person to blame is the person who commits the sexual assault. ... That if I think rape is bad and I also think that you shouldn't make decisions that heighten your own risk factor. that I'm somehow blaming the person who heightened the risk factor for the bad thing that happened to them. No, two things can always be true at once. And normally they are.
만약 누군가가 성범죄를 저질렀다면, 오직 비난 받아야할 사람은 성범죄를 저지른 그 사람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둡니다. ... 만약 내가 강간이 싫다면, 나 또한 어떻게든 강간이 일어날 위험요소를 높이는 결정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그 강간이 일어날 확률을 높이고 있는 사람을 비난하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 두 가지는 언제나 한 번의 사실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개가 그렇게 발생합니다.
벤 샤피로가 말하는 두 가지는 강간과 강간이 일어날 위험요소이다. 그의 대답에서 '야한 옷차림'이라는 용어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질문과 이후 이어지는 그의 대답을 보았을 때, 그의 주장은 '강간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강간의 위험을 높일 수 있는 야한 옷차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혹시 내가 그의 말을 잘못이해한 것인지 싶어 댓글을 확인해보더라도, 대체로 위와 같은 의미로 보인다.) 즉, 그는 야한 옷차림이 강간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영상을 보고 굉장히 기분이 나빴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벤 샤피로의 주장은 틀렸다.[2]
특정 옷차림과 강간 사이에 인과관계는 증명되지 않았다. 물론 옷차림과 강간 사이에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먼저 성범죄 전반으로 보자면, 가벼운 성추행이나 불법 촬영 등의 범죄에서는 노출이 있는 옷차림이 범죄의 표적이 되는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3] 강간만을 보자면, 옷차림과 해당 범죄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2013년에 미국 캔자스 대학교에서 성폭행 피해 당시 입었던 옷을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다. [4] 야한 옷들이 전시되었을까? 오히려, 이 전시회의 목적이 '성폭력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 때문에 일어난다'라는 편견을 깨는 것일 정도로, 소위 말하는 '야한' 옷들은 없었다.
2020년 기준 국내 강간 범죄 피해자의 절반 이상(52.5%)이 유아, 아동, 청소년으로 분류되는 만 24세 이하이다. 만 18세 이하의 미성년자로 좁혀봐도, 43%에 달한다. [5]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미성년자가 '야한 옷'을 입고 있어서 강간의 위험이 높다'라고 말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특정 옷차림과 강간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근거는 없다. 상관관계가 없으니 당연히 인과관계는 존재할 수가 없다.둘째, 벤 샤피로는 범죄자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
'야한' 옷차림이 강간이 일어날 위험요소라고 정의하는 것은 범죄자의 논리이다. 범죄자가 아니고서야, 이 논리를 인정해서는 안된다.
벤 샤피로가 말하는 '강간이 일어날 위험요소'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누구의 입장'에서 위험요소 인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강간 위험 요소는 낮은 성인지 감수성, 성 불평등 권력관계, 성범죄에 대한 안일한 인식, 가해자에 대한 낮은 형량, 여성 혐오, 성 차별 인식 등이다. [6] 옷차림, 음주 여부, 장소, 시간, 언행, 반항 여부 등은 가해자 입장에서 위험 요소, 즉 핑곗거리이며 범죄 정당화 요인에 불과하다. 심지어 야한 옷차림에서 '야하다'의 정의를 내리는 주체도 가해자이다. 범죄 정당화 요인은 무한히 늘어날 수 있고,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가해자가 주장하는 모든 상황을 절대 피할 수 없다.
벤 샤피로는 가해자 중심의 논리를 인정하고 있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이성, 도덕심, 인내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강간범들이 스스로의 범죄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 변명으로 하는 말들에 왜 힘을 실어주고, 결과적으로 왜 다시 강간이 일어날 확률을 높이는 결정을 하는가?
셋째, 벤 샤피로의 발언은 매우 무례하다.
그의 발언을 정말 좋게 받아들여서, 범죄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주의해야 한다는 조언으로 여길 수도 있다. 실제로 가족들이나 친구들 사이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은 흔하다. 그러나, 그의 발언에는 '염려'가 담겨 있지 않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같은 말을 할 때는 매우 조심스럽다. 말을 하는 사람도 마음이 아프기 때문에 걱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벤 샤피로 발언에는 그러한 염려나 배려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성범죄자 피해자 혹은 피해자가 될까 두려워해 본 적이 있는 사람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전혀 없으니, 비난 또는 공격을 느껴질 수밖에 없다.
바로 이어진 발언에서 그는, '남자든 여자든 품위를 지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즉, 슬럿워크 운동이 품위 없는 행동이라고 까고 있는데, 이는 슬럿워크 운동의 취지 조차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단 한 번이라도, 본인이나 본인의 가족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면, 절대 함부로 뱉을 수 없는 말이다.더보기출처
[1] 슬럿워크
*영문 위키피디아에는 '남성' 위주 시각이라는 말은 없어 보이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가해자' 위주 시각으로 수정되야할 듯하다.
ko.wikipedia.org/wiki/%EC%9E%A1%EB%85%84_%ED%96%89%EC%A7%84
잡년 행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최초의 슬럿워크, 2011년 4월 3일 토론토 잡년행진(슬럿워크, SlutWalk)은 여성들이 소위 '야한' 옷을 입고 거리를 행진하는 시위 행위이다. '슬럿워크'(Slut Walk) 운동
ko.wikipedia.org
[2] [단독] “성범죄는 대부분 우발적”통념 틀렸다
* 2016년 자료
www.hankookilbo.com/News/Read/201602050451678068
[단독] “성범죄는 대부분 우발적” 통념 틀렸다
서울 인천 전자발찌 부착 235명 분석 짧은 치마, 늦은 귀가 등 원인보다 새벽 집에 있는 20대 여성 주타깃 계획적 성범죄가 두 배 이상 많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하 형정원)이 서울과 인천의 전
www.hankookilbo.com
[3] [싸줄펌] 박명수 발언과 성범죄, 여름 그리고 노출 관계
* 2016년 자료이며, 커뮤니티 자료이나, 자료의 출처가 명확해 보이는 글
gall.dcinside.com/board/view/?id=superidea&no=73525
[싸줄펌]박명수 발언과 성범죄, 여름 그리고 노출 관계 - 초개념 갤러리
박명수 발언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면 이틀새 노출이 성범죄 발생과 연관이 있는가하는 언급이 많았었구 이슬람 국가등의 통계와 비교하며 노출과 성범죄는 관련이 없다는 등의 글을 올리신분
gall.dcinside.com
[4] 강간 피해자 옷차림 전시
“대부분 아이 옷”···‘성폭행 피해자 옷’ 전시회를 우리나라에서 개최하지 못한 끔찍한 이
해외에서 열렸던 ‘성폭행 피해자 옷’ 전시회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열리지 못하고 있다.
m.insight.co.kr
[5] 성범죄백서, 법무부, 128쪽, <표 3-3-26> 죄명별 피해자 연령
www.moj.go.kr/bbs/moj/160/520445/artclView.do
케이투웹테크
인터넷을 이용하시는 모든 분들이 인터넷으로부터 자유롭기를 희망하며, 케이투웹테크(주)가 함께 합니다.
www.k2web.co.kr
[6] 여성인권단체연합, 기자회견 자료 14쪽 결론 부분
* 대한민국에서 2008년 부터 2018년까지 10년 간 성범죄 피해자 중 여성의 비율은 93.7%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의 가장 최근 보도자료인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보도자료'에서 그들의 가치관(그들이 생각하는 강간 위험 요소)을 살펴볼 수 있다.